나는 지금 덕질 놀이 중이다.

나는 지금 덕질 놀이 중이다. 02

Ho-찡찡이 2025. 2. 9. 02:22

[ 나는 지금 덕질 놀이 중이다. No.02 ]

나의 첫 공연의 기억은 소방차 공연이다.
중3 때 연합고사를 마치고 수고했다고 언니 친구가 초대권을 주었다.
( 이때는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연합고사라는 시험을 보고 커트라인을 넘어야 인문계 고등학교를 입학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재수를 해서 들어오거나 실업계나 공업계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  
그 언니가 소방차의 김태형 님과 친분이 있어서 초대권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의 소방차라면 지금의 탑 아이돌이었다.
춤을 추면서 라이브를 하고, 와이어에 매달려 공연장 여기저기를 날아다녔다.
새로운 경험에 넋이 빠져 있었다. 어떻게 공연을 봤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신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 뒤로도 라디오 공개방송이라든지 콘서트를 가끔 다녔다.  
왜 공개방송은 평일에 하는지 야간 자율학습 땡땡이를 쳐야 했다.

본격적으로 장국영 님의 덕질은 고등학교시절 홍콩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많이 접하게 되면서이다.
미디어에서도 홍콩 누아르 영화의 황금기라 하며 많이 소개되고 하면서 남자아이들은 주윤발에 여자아이들은 장국영이나 유덕화의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영화를 찾아보고, 음악을 듣고, TV에서 CF가 나오는 것을 보고, 브로마이드를 주는 영화잡지를 사고 ( 그러면서 영화에 대한 지식도 많아지는 순기능 ) 지금 어린 친구들이 굿즈를 사고, 음반을 사고, 포토카드를 갖기 위해 여러 장의 음반을 사듯이 기사가 나온 온갖 잡지를 구매했다. 그러면서 내 방의 모든 벽에는 장국영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은 이때 중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6.25 때 헤어지신 할아버지께서 연락을 주신 것이다.  
중국에서 편지를 고향으로 보내오신 것이다.
중국에서 살고 계신다고, 혹시 아들이 살아 있는지, 혹시 연락이 되는지를 말이다.
전쟁이 나고 (그때 아버지께서는 개성 쪽에서 사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장손이라 전쟁이 나자 친척 손에 맡겨져 고향인 양평으로 내려오시게 되면서 가족과 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친척 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고 한다.)
휴전이 되고, 분단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는 그 시간 동안 고향집의 주소를 기억하시고 편지를 보내신 것이다.
아직 시골에는 여러 친척분들이 살고 계셔서 편지가 아버지께 전달이 되었다.
전화 통화도 하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중국을 가시게 되셨다.
그때 혹시 중국에서 장국영 음반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부탁을 드렸다.
중국에서 홍콩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어렵게 막내딸을 위해 구해 오셨다.
장국영, 알란탐, 유덕화, 성룡 등 여러 홍콩배우들의 카세트테이프를 가져오셨다.
그렇게 홍콩배우들의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완벽한 덕질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장국영 내한공연... 이선희 장국영 조인트 콘서트가 체조경기장에서 열렸다.
이번에도 형부의 도움으로 공연을 보러 가게 되었다.
실물 첫 영접...
상상이상의 멋짐이 나를 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전진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조인트 콘서트라고는 하지만 이선희 님의 콘서트에 게스트 형 식으로 참여하여 솔로곡 몇 곡 부르고 이선희 님과 『J에게』듀엣곡을 부른 것으로 기억된다.
아름다운 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사진을 무지 많이 찍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진 현상을 하고 보니 몇 장 없음에 셔터를 누르기만 하고 필름을 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자책해도 어쩔 수 없는 일....
( 지금은 필카를 써도 찍으면 자동으로 필름이 넘어가지만 옛날 카메라는 사진을 찍고 필름을 수동으로 돌려야 했다. 일회용 필카처럼 말이다. )

요즘도 공연에 가서 가수가 관객석으로 나에게로 다가오는데 동영상을 찍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을 사진모드로...
최애가스가 내 앞을 지나갔는데... 남은 것이 없다는 사실...
아쉬움만 남는 일들이 종종 아니 아주 자주 일어난다.
릴랙스 하자고... 워~워~~

오래된 앨범 속 장국영 콘서트 사진들
앨범에 고이 간직되어 있는 티켓
직접 찍은 사진 보관상태가 굉장히 좋음 ㅋㅋ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생이 되면서는 음주가무의 유흥을 즐기느라 덕질은 잠시 휴지기에 들어갔다.

유소년시기에는 부모가 특히 엄마가 최우선 되고 부모만이 나를 지켜 줄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아가 발달하면서 점점 성인에 가까워지는 청소년시기에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내 생각에는 나는 이제 어른인 것 같은데 왜 나를 애 취급하지? 하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서적으로 완벽하게 불균형을 이루는 시기인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절대로 모른다.
그러기에 그 시절이 작은 일에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화나고 그래도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청소년 시절에는 절대적 나만의 우상을 찾고 숭배하면서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것으로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하고, 몸과 마음의 성장이 불균형을 이루기에 정서적으로 불안한 나를 위로하기도 한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인 것이다.
사춘기 시절은 나 자신도 뭔지는 모르지만 불안하고 자신의 대한 불신도 많기 때문에 절대적인 우상의 대상이 필요한다
어떤 식으로든 찾아야 한다.
어떤 이는 친구가 될 수 있고, 어떤 이는 운동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독서가 될 수 있고, 어떤 이는 탈선과 일탈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 우상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해 주지는 않지만 그냥 그곳에 변하지 않고 있어만 준다면 되는 것이다.  
그 대상을 믿고 의지하며 사춘기 시절을 지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한다.

덕질의 대상이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학교 때 친구 집에서  영웅본색을 보지 않았다면 장국영에게 빠졌을까?
아주 잠깐의 계기로 덕질에 입문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한 순간에 말이다.
교통사고처럼 말이다.
그래서 덕통사고라고 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