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덕질 놀이 중이다.

나는 지금 덕질 놀이 중이다. 01

Ho-찡찡이 2025. 2. 7. 03:14

[ 나는 지금 덕질 놀이 중이다. No.01 ] 

덕후 놀이 중인 나는 요즘 너무 즐겁다.

24년 늦은 겨울 2월
겨울의 끝자락에 만난 오래된 나의 가수 "장범준"의 콘서트였다.   

나의 하나뿐인 능글맞은 아들은 군대에 입대해서 군생활을 잘 해내고 있다.
군생활이라지만 집에서 네비를 찍으면 10분 안에 도착하는 부대로 와있으니, 다른 부모들처럼 멀리 보내 놓은 느낌보다는 꼭 학교 기숙사에 있다가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다니러 오는 느낌이다.

나 또한 30년 가까이해 오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20년 이상 살던 고양시를 떠나 이곳 송탄으로 이사를 와서 언니 옆에 자리를 잡았다. 

대학 졸업 후 3개월 출산 휴가 말고는 계속 일을 해야 했던 나에게 주는 아주 긴 휴가의 시작이었다.
몇 주는 계속 잠 만 잤다.
자고 일어나서 또 자고, 밥 먹고 또 자고, 저녁에 언니랑 술 한 잔 하고 또 자고....
원래 잠을 몰아 자는 편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나도 놀랄 만큼이나 잠을 잤다.
힘들게 살아온 나의 20대 그리고 고단했던 30대, 정신없이 달려온 40대,
50을 바라보는 나에게 보상이라도 하듯이 아무 걱정 없이 푹 잠을 잘 수 있는 날이었다.

직장맘들이 그렇듯이 일하고 애 키우고 집안 일하고 너무 바쁘게 지내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가끔 여유도 즐기면서 잘 살아왔다.
혼자서 아들 키우면서 정말 열심히 잘 살았다고 나에게 칭찬해 주고 싶다.
직업상의 이유로 여름과 겨울 방학 시즌에만 누구나 다 노는 날에만 여행을 다니고 나들이를 하면서 늘 북적대고 차 막히고 그래도 즐겁지 아니한가? 누구나 쉴 수 있는 여유도 아니니깐....

일을 그만두고 가끔 알바를 하면서 평일에 여행을 다니면서 우리나라 유명 여행지에도 사람이 없는 날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걸 즐길 수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조카는 잔나비 팬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콘서트를 하면 몇 회차씩 꼭 가고, 지방 공연도 가끔 다니고, 굿즈를 모으고 (나도 어렸을 땐 그랬는데) 여름이 되면 펜타포트라는 락페스티벌에 한 여름 뙤약볕 밑에서 3일 동안이나 열심히 달리고 온다고 한다.
한때 나도 락을 즐기던 락스피릿이 있는 사람으로 그게 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보고 조카 말도 듣고 아하 그렇구나...
어린 시절 헤비메탈을 즐겨 들을 때, 90년대는 록의 시대라 신촌에 가면 락전문 카페에서 해외 밴드들의 공연 실황들 보여주던 것이 생각났다.
큰 화면, 귀가 찢어질 듯한 스피커 소리 그리고 해드뱅이를 하던 사람들, 그 속에 나. 그렇게 즐기던 공연을 그 화면 속의 사람들처럼 즐길 수 있는 곳이라.... 우리나라도 저런 공연이.... 너무 모르고 살았나... 하지만 내가 가게엔 너무 무서운 아니 두려운 공간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와는 먼 곳에 있는 요즘 젊은이 즐기는 문화인 듯했다.
그때 조카가 "이모, 페스티벌에 가면 노부부가 같이 와서 편하게 음악 듣고 있기도 해. 굉장히 보기 좋아 보여. 이모도?" 하지만 나는 좀 뭔가 내키지 않지만 하지만 가보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범준 콘서트를 하는데 불법 예매로 공연이 취소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나도 공연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유튜브에 공연 공지가 올라오고, 신청하고, 추첨하고, 당첨되었다.
첫 번째 신청에 당첨이라니..... 누구는 몇 번 시도했는데 계속 떨어진다는 댓글이 많았다.
근데 나는 한 번에 초심자의 행운이려나.
초심자의 행운이라면 임영웅 콘서트 티켓팅에 성공하여 엄마께 효도한 일, 그 뒤로 계속 실패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들과 같이 좋아하던 장범준 콘서트 당첨됐다고 군대에 있는 아들에게 자랑도 하고, 철없는 엄마같이 말이다.  
같이 가고 싶다고 울부짖는 듯한 아들의 답장에 미안하기는 했지만 - 엄만 너무 행복하단다.  
버스커버스커를 슈퍼스타K 예선 때부터 응원하던 팀이라 경연 때 나오는 음원을 늘 차에서 흘러나왔다.  
아들은 장범준 노래에 스며들게 만는 게 엄마라고, 엄마차를 타면 늘 흘러나오는 장범준 음악을 듣고 자라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팬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장범준 님의 공연은 너무나 즐거웠다.
나의 첫 스탠딩 공연이었다.
아니다.... 나의 첫 스탠딩은 고등학교시절 장국영 님의 내한 공연이었다.
중학교 때 본 영웅본색에서 푹 빠져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그때 전교생이 알 정도로 장국영에 미쳐있었다.
지금 나의 덕후놀이는 이때부터 인 듯싶다.
그때 사촌언니 형부가 중앙일보에 근무하셔서 '하이틴' 잡지를 편집하시는 일을 하셔서 공개방송이라든지 콘서트 초대권을 자주 주시고 잡지책도 매번 갖다 주시곤 하셔서 학교에서는 친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공연 등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공연장 스피커 앞에 서면 심장이 울리는 소리가 좋았다.
무대 앞에서 미친 듯이 공연을 즐겼다.
그 시절은 지금과 다르게 선착순으로 공연장에 입장하기 때문에 일찍 줄을 서고 스탠딩도 원하는 사람만 좌석에서 보다가 무대 앞으로 달려 나가면 되는 시절이었다.
관계자가 말리기는 하지만 그때 사람들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나도 듣지 않았다.
무대 위의 스타만 보고 달렸다.
90년에는 그랬다.